본문 바로가기
생각

껍데기만 찾는 세상

by 근본있는녀석 2024. 3. 22.
728x90

영어공부를 하다 보면

아주 일상적인 문장들을 배우게 된다.

그게 많이 익숙해질 즈음

영어로 된 컨텐츠를 본다거나, 여행을 가는 등 영어를 쓸 일이 생겼을 때

막히는 부분이 생긴다.

흔히 말하는 관용어, 은어 등이 그런 것들이다.

그 경우에 사람들은 '와 이런 문장들이 실제로 쓰이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주변에 공유한다.

영어권 사람들은 이런 문장을 자주 쓰더라.

그 얘기를 들은 다른 사람들은 기초 영어를 공부하다 갑자기

관용어, 은어 등을 공부한다.

 

나도 그랬기 때문에 무슨 맘인지 안다.

하지만 그건 순서가 잘못됐다.

기초를 충분히 공부하는 과정에서 그 외의 것들이 따라오는 식이 되어야지,

중요한 건 공부하지 않고 나머지 것들에만 집중하면 안되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그 사람이 영어를 잘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정작 그 사람은 영어로 된 책을 읽을 수 없고, 영어로 대화할 수 없다.

 

--------------------------------------------------------------------------------------------------------------

 

업무를 하던 중 인사 시즌이 되어 팀원이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다.

이제 다른 사람을 구해야 한다.

주변에 괜찮은 사람 없냐는 팀장님의 말에

누군가 이 업무 관련 자격증을 가진 사람 명단을 쭉 뽑아왔다.

그 중 한 명이 우리 팀원이 되었다.

 

그런데 아는 게 없다.

실무는 모른다 하더라도 기초 지식정도는 가지고 있을 줄 알았다.

자격증 공부 하지 않았느냐 물어보니

자기는 문제풀이 위주로 공부해서 기억이 거의 없다 한다.

 

대체 그 사람의 자격증은 무슨 의미일까.

누군가 자신을 한 번 찾을 이유를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그 역할을 했다 할 수 있는 건가.

 

--------------------------------------------------------------------------------------------------------------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다 보니

노하우를 찾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는 걸 알았다.

'건강하게 사는 노하우'

'후회없이 사는 방법'

'인정받는 방법'

'좋은 남편감 고르는 방법'

등등

영상 종류도 엄청나게 많다.

조회수도 매우 높다.

내용도 좋다.

틀린 말도 별로 없고, 무료한 인생에 자극을 주는 좋은 말들도 많다.

 

하지만 댓글을 보다 보니 뭔가 잘못된 게 느껴진다.

이 사람들은 일상을 열심히 살면서, 아는 범위에서 노력하다 막혀서 노하우를 찾는 게 아니었다.

시작하기 전에 노하우를 찾고 있다.

아니다. 이것도 잘못된 게 아니다.

시작하기 전에 막막하면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행동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 노하우만을 찾고 있다.

그리고는 그런 영상들에 자극을 받아가며

기준이 점점 높아진다.

기준이 높아지다보니 시도를 못한다.

 

그 시도를 하는 시간마저도 알차게 써야 한다고

그 시도마저도 큰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그 시도마저도 누군가에게 보여줬을 때 쪽팔리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게 점점 늪에 빠진다.

 

그러고는 남을 평가할 때는

노하우 영상에서 봤던 그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한다.

정작 중요한 건 상대방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인데

그 껍데기만을 판단한다.

 

--------------------------------------------------------------------------------------------------------------

 

내가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초반의 이야기다.

이제 겨우 하이코드 잡기 시작한 놈이

'황혼'이란 곡을 듣고 꽂혀서

그것만 죽어라 연습했다.

몇 개월을 연습했을까

초보느낌은 없앨 수 없지만

꽤 있어보이게 칠 수 있게 됐다.

 

누가 기타를 쳐보라 하면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그 곡을 연주했다.

그럼 사람들은 내가 기타를 꽤 잘 치는 줄로 알곤 했다.

그리고 난 그 말들을 들으며 뿌듯해했다.

하지만 정작 동아리방에 가서 기타연습을 할 때면

내가 할 줄 아는 건 코드 잡고 장자자장 연주하는 게 다였다.

'황혼'을 연습하는 동안 실력은 더 떨어졌다.

감미로운 건 할 줄 몰랐다.

동요도 연주하라면 제대로 못했다.

이론도 몰랐다.

코드라도 잘잡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남은 건 '황혼'이라는 껍데기 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원리를 알고 외운 게 아니라 통으로 외우다보니

시간이 지나자 머릿속에서 지워져 그저 과거의 영광으로만 남아있다.

 

--------------------------------------------------------------------------------------------------------------

 

껍데기.. 중요하다.

내가 여태 한 노력이 어느 정도 결실을 이루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건 그 껍데기다.

너무 껍데기가 없어도

사람들한테 보여줄 게 없다.

기타 실력은 꽤 되지만 레퍼토리가 없어서 보여줄 게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껍데기만 쫓는 건 잘못됐다.

많은 시도를 해보는 게 중요하고

그 와중에 시행착오를 겪어보고

그 분야에 대해 찾아보고 연구하고 탐구하고

막히는 부분이 생겼을 때 우연히 접한 노하우로 그게 풀리는 즐거움을 느끼고

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것을 하나 이루어보는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

 

많은 것들을 이루지는 못할 수 있다.

받아들이자

시간은 유한하고 우리는 많은 것들을 가져갈 수 없다.

나는 무엇이 더 가치있다고 생각하고

무엇을 가져가고 무엇을 놓아줄 것인지 느껴보자.

 

일단 행동을 하는 게 중요하다.

아는 게 있으면 하고

안되면 일단은 되는 거 하자.

그러다 막히면 찾아보고, 물어보고, 연구하자.

 

그리고 사람을 판단할 때도 껍데기로 판단하지 말아야겠다.

728x90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면피에 대한 생각  (1) 2024.01.14
내가 왕년에는 말야  (1) 2024.01.14
이번 연도 나의 영어공부 계획  (0) 2024.01.10
상대를 바꾸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 맞춰나가는 것  (0) 2023.11.11
닳아 없어지도록 쓰자  (0) 2023.10.01
좋은 점을 보는 사람  (0) 2023.08.20